News한국일보

주택시장 급변…“디파짓 못 받아도 구매 계약 취소할래요”

By 2022년 11월 02일 No Comments

▶ ‘이자율 급등·경기 침체 우려·집값 하락’ 여러 문제에 마음 흔들리는 바이어들

주택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주택 거래와 주택 가격이 감소한 것은 물론 시장 주도권도 이미 바이어의 손으로 넘어갔다. 주택 시장이 바이어스 마켓에 진입한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주택 구매 계약 취소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중개 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8월 중 주택 구매 계약 취소율은 15%였다.

전달보다(17%) 소폭 하락했지만 계약이 체결된 거래 10건 중 1건 이상은 취소를 맞고 있다. 지역별로 취소율은 큰 차이가 있는데 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경우 26%에 달했고 라스베가스, 애틀랜타, 올랜도, 포트 로더데일 등의 도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재정 전문 머니 매거진이 주택 구매가 줄줄이 취소되는 원인을 분석했다.

◇ 사소한 결함도 취소로 이어져

미네소타 주에 집을 보유한 빅토리아 스태튼도 지난달 생각지도 못한 주택 구매 취소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9월 초 4,000평방피트 규모의 집을 내놓자마자 바이어들의 문의가 잇따랐고 뒤이어 7명의 바이어가 오퍼를 줄줄이 보내왔다. 스태튼은 그중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바이어의 오퍼를 선택해 곧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녀는 이제 집을 팔게 됐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이사 준비를 하던 중 바이어로부터 계약 취소 통보를 받았다. 홈 인스펙션에서 과거에 실시한 몇몇 수리 항목이 시 안전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고 바이어가 이를 근거로 계약 취소를 결정했다. 스태튼은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마켓이 아직 ‘핫’해 집을 다시 내놓으면 곧 팔릴 것으로 기대했다.

기대대로 다른 바이어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계약을 체결했지만 역시 직전 바이어와 같은 이유로 계약은 취소되고 말았다. 올해 초 만해도 웬만한 주택 결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바이어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소한 결함을 쥐 잡듯 찾아내 가격 인하를 요구하거나 구매 계약을 취소하는 바이어가 부쩍 늘었다.

◇ 이자율이 너무 올라서

무서운 속도로 치솟는 모기지 이자율이 구매 계약 취소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이자율로 바이어의 주택 구매 능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초 3.22%에 불과했던 30년 고정 이자율은 현재 7%를 넘어섰다. 이자율이 지난 2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자율 급등으로 주택 구입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중간 가격대 주택 구입비는 1년 전보다 무려 70%나 높아졌는데 월 모기지 페이먼트 비용으로 환산하면 매달 900달러를 더 납부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급격한 이자율 오름세뿐만이 아니다. 최근 나타난 이자율 불안전성이 시장의 불안 심리를 부추겨 구매 계약 취소 사태를 야기하고 있다. 이자율은 7월과 9월 사이 5.7%에서 4.99%로 급락한 뒤 다시 6.7%로 치솟는 등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였다. 이자율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것도 시장에는 부정적이지만 이처럼 가파른 등락을 보일 경우 이자율이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택 수요는 일시에 사라진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터닷컴의 대니얼 해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자율이 일주일 사이 0.25%포인트 등락을 하는 등 매우 큰 변동성을 보인 바 있다”라며 “급격한 변동이 불안 심리를 가중해 주택 구매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경제가 어디로 향할지 불확실한 점도 주택 구매 계약 취소 원인으로 지적된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바이어 사이에서 곧 닥칠 경기 침체와 대량 해고 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전문가 예측과 달리 주택 시장 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구매 계약 취소로 이어지고 있다. 주택 시장이 이미 정점을 찍었다는 판단에 지금 집을 사는 것은 ‘상투 잡는 것’(최고가 구입)으로 여기는 바이어도 늘고 있다.

바이어 데니스 셔시코프도 너무 비싼 가격에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 같아 디파짓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감수하고 중도에 계약 취소를 결정했다. 결국 2,000달러에 달하는 디파짓을 포기하고 저렴한 가격대의 집을 보던 중 계약을 맺었던 셀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다른 바이어를 찾지 못해 가격을 1만 달러 내려줄 테니 다시 계약하자는 제안이었다. 셔시코프는 계약 취소로 디포짓 2,000달러를 손해 봤지만 1만 달러를 내린 가격에 구입하면 8,000달러를 깎는 셈으로 곧장 재계약에 동의했다.

◇ 다시 돌아온 컨틴전시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컨틴전시가 포함된 오퍼를 제시하는 바이어는 셀러와 구매 계약 체결이 거의 불가능했다. 컨틴전시는 매물에 문제가 발생하면 구매 계약을 취소하고 디파짓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 바이어 보호 조항이다. 구입 경쟁이 치열해 매물에 문제가 발견될 위험을 감수하고 컨틴전시가 빠진 오퍼를 제출하는 바이어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컨틴전시를 포함한 오퍼가 크게 늘었고 이를 수락하는 셀러도 많아진 것인데 그만큼 주택 구매 계약 취소 가능성도 높아진 셈이다.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바이어에게 유리한 조건의 오퍼에 합의한 셀러가 92%에 달했고 컨틴전시 조항이 포함된 오퍼를 수락한 셀러는 41%였다. 컨틴전시는 크게 매물 상태를 점검하는 홈 인스펙션 컨틴전시, 주택 감정가를 확인하는 감정가 컨틴전시, 모기지 대출 승인 여부에 따른 론 컨틴전시 등 3가지다. 이중 홈 인스펙션 컨틴전시를 활용한 구매 계약 취소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수리에 필요한 자재비와 인건비가 급등했을 뿐만 아니라 수리 업체를 찾기도 힘들어 매물 결함이 발견되면 셀러와의 재협상보다 아예 계약 취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 주가 폭락에 주택 구입 자금 사라져

기준 금리, 물가 지수 등 경제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주식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급락하는 주식 시장 탓에 주택 구입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주식 시장이 최근처럼 큰 변동성을 보인 경우가 드물다. 그 결과 401(k), IRA와 같은 은퇴 연금 계좌와 기타 투자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증발하고 있다. 연방 준비은행에 따르면 최근 주식 시장 폭락 등의 영향으로 미국인의 자산 가치가 무려 9조 달러나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주식 등 투자 상품을 처분해 주택을 구입하려고 계획했던 바이어는 주택 구입 자금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집을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더 싼 집이 나와서

주택 가격은 이제 완연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수요가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매물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중 시장에 나온 매물은 전년 대비 27%나 증가했고 이로 인해 매물이 팔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도 50일로 늘었다. 얼마 전과 달리 셀러가 경쟁이 발생하면서 9월 중 매물 호가인 리스팅 가격을 내린 셀러가 전체 중 19%를 차지했고 주택 매매 가격도 6월 이후 4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택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 바이어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셀러와의 가격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구매 계약을 취소하고 더 싼 집을 찾으려는 바이어가 점점 늘고 있다.

<준 최 객원 기자>

[출처] 미주 한국일보 2022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