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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피하니 물’, 잦은 자연재해로 더 이상은 못 살겠다

By 2021년 09월 23일 No Comments
  • 이상 기후에 등 떠 밀려 타주 이사 늘어

  • 반면 저소득층, 비싼 집값 피해 자연재해 지역 유입

하루가 멀다 하고 자연재해 관련 뉴스를 접하고 있다. 서부는 산불, 동부는 허리케인과 폭우로 몸살이다. 최근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정든 집을 떠나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가주의 경우 잦은 산불과 가뭄, 폭염 등을 견디지 못하고 타주로 이사하는 주민이 많아졌다. 플로리다 주는 해수면 상승 위험과 걸핏하면 발생하는 홍수가 타주로 주민을 등을 떠미는 주요 원인이다. CNBC가 이상 기후 현상과 이에 따른 기후 위험이 주택 시장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짚어봤다.

◇ 산불 시즌 피해 타주 오가는 철새 생활

크리스티 젠트리와 그녀의 남편의 지난 4년은 산불과의 전쟁이었다. 북가주 샌타 로사에 거주하는 부부는 2017년 발생한 산불로 무려 3주 동안 대피 생활을 해야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 2019년 부부는 또 다른 산불 소식에 하와이 여행 도중 급히 집으로 달려왔다. 화마가 집을 덮치기 전 애완동물과 중요한 물품들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산불로부터 집과 가족을 보호하는 일이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라며 “산불 피해를 여러 차례 겪으며 ‘이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산불 피해를 경험한 부부는 결국 2020년 8월 오리건 주 벤드 지역의 한 주택을 임대하기에 이르렀다. 가주 산불 시즌 동안 산불 피해를 피해 임시 거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리건 주에 집을 구하자마자 같은 해 9월 산불이 다시 북가주를 덮쳤다. 다행히 주택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헛간 구조물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부부는 그해 11월 중순까지 대피 생활을 이어가며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결국 부부는 올해 1월 벤드 지역에 주택을 구입한 뒤 산불을 피해 샌타 로사를 오가며 철새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부부는 “불만 보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할 지경”이라며 “실내에서는 촛불도 켜지 않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 기후 변화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

CNBC에 따르면 젠트리 부부처럼 기후 변화로 인해 거주지를 옮기는 미국인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부동산 중개 업체 레드핀이 지난 4월 실시한 조사에서 내년 중 이사 계획이 있는 미국인 중 절반은 자연재해와 이상 기후가 이사를 결정한 첫 번째 이유라고 밝혔다.

지난달 발표된 ‘국제연합’(UN)의 기후 관련 보고서는 기후 변화를 우려하는 미국인들의 이주를 재촉했다. UN은 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급격히 줄이지 않을 경우 20년 내 지구 표면 온도를 산업화 이전 수준에서 섭씨 1.5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경고를 내보냈다.

심각한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미국인 주택 소유주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레드핀의 조사에서 미국인 5명 중 1명은 기후 변화가 이미 주택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소유주 중 약 35%는 언제 닥칠지 모를 자연재해로부터 소중한 집을 보호하기 위해 이미 약 5,000달러의 비용을 들여 보강 작업을 실시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79%에 달하는 미국인은 자연재해 빈발로 주택 구입이 꺼려진다고 했는데 이상 고온 지역과 해수면 상승 지역의 주택 구입을 피하겠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 저소득층은 자연재해 지역으로 몰려

젠트리 부부처럼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가구는 자연재해를 피해 타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자연재해 대비 공사를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극심한 주택 매물 부족과 치솟는 주택 가격으로 인해 일부 주택 구입자들은 자연재해 다발 지역 주택 시장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레드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산불, 폭염, 가뭄, 홍수, 허리케인 위험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의 인구가 순유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지역은 자연재해 위험 때문에 주택 가격이 40만 달러대 미만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대부분 저소득층 주택 구입자들의 유입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자연재해 방지 작업을 실시할 재정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자연재해 발생 시 큰 피해가 우려된다.

◇ 불 피하니 물

캐서리 켈리와 남편도 지난 8월 30년간 산 북가주 샌호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켈리 부부 역시 점점 잦아지는 산불 발생이 이사를 결정한 이유였고 부부는 고향인 매서추세츠 주 나티크 지역으로 귀향했다. 부부가 산불 피해보다 더 걱정했던 것은 13살짜리 딸의 건강. 산불로 인한 연기가 딸의 폐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이사를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귀향을 결정하기 전 부부는 북가주 산불을 피해 우선 남가주 헌팅턴 비치에 소유하고 있는 휴가용 주택에 머무른 적이 있다. 산불 피해 걱정이 전혀 없는 바닷가 인근 주택이었지만 부부에게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우려였다.

결국 부부는 산불 우려가 적고 해수면 상승 위험이 전혀 없는 매서추세츠 주 고향에 귀향해 현재 딸의 건강에 대한 우려 없이 생활하고 있다.

◇ 홍수 대비 건물 지반 높이는데 25만 달러

해수면 상승 위험에 실제로 직면한 지역은 플로리다 바닷가 도시들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큰 공사비를 들여 해수면 상승과 잦은 홍수에 대비한 보강 작업을 실시해야 하고 공사비 여유가 없는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실정이다. 플로리다 주 키 웨스트에서 12년 동안 거주한 킴 로마노는 타주로의 이사를 결정한 경우다.

2019년 해수면 상승 위험과 잦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로마노는 보강 작업에 필요한 공사비를 알아봤다. 홍수 피해에 대비하려면 주택 건물의 지반을 적어도 7피트 정도 올리는 작업을 실시해야 하는 공사비만 무려 약 25만 달러가 필요했다. 웬만한 집값에 해당하는 공사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로마노는 집을 내놓기로 하고 지난해 7월 아들이 살고 있는 시애틀로 거주지를 옮겼다.

<준 최 객원 기자>

[출처] 미주 한국일보 2021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