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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페이먼트 마련 위해 부모와 사는 캥거루족 증가

By 2024년 01월 18일 No Comments

▶ 자녀 양육비·높은 임대료·학자금 대출 등 치여

▶ 저가 주택 공급 늘기 전까지 추세 이어질 전망

 

젊은 세대의 내 집 마련이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집값과 높은 이자율로 인해 주택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세대가 많다. 높은 물가와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 때문에 주택 구입에 필수인 다운페이먼트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가진 뒤에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른바 캥거루족이 다시 늘고 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다운페이먼트를 한 푼이라도 더 마련해 내 집 마련 시기를 앞당겨 보려는 전략이다.

◇ 렌트비 아껴 다운페이먼트 마련

올해 27세인 브랜든 폴린은 얼마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했던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미 성인을 훌쩍 넘긴 나이인 데다 자고 나란 도시인 메릴랜드주 인디언헤드시의 시장이란 직함까지 가지고 있던 터라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 같은 처지는 폴린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자란 친구들도 대학을 졸업한 뒤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고 30분 거리에 사는 약혼녀도 주거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겠다는 생각에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어색하고 부끄러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렌트비를 한 푼도 낼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해서 모은 다운페이먼트로 2022년 6월 현재 부인과 작은 마당이 딸린 침실 2개짜리 버젓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폴린은 “다른 젊은 세대가 내 집을 마련하는 일반적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 집을 마련하게 돼서 무척 기쁘다”라고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혔다.

◇ 치솟는 생활비에 어쩔 수 없는 선택

주택 구입 여건이 장기간 악화 일로를 걷고 있고 렌트비마저 치솟으면서 폴린처럼 내 집 마련을 위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이 최근 다시 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2022년 가족이나 친구 집에서 본인 소유의 집을 직접 이사한 첫주택구입자 비율은 27%로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 비율인 23%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제기카 라우츠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모님 집에 살면서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첫주택 구입자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가 독립생활을 포기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라우츠 이코노미스트는 성인 MZ 세대는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자녀 양육비와 함께 살인적인 주택 렌트비에 시달리는 세대다. 지난해 11월 침실 1개짜리 아파트의 전국 중간 렌트비는 1,500달러였지만 젊은 선호 직장이 몰려있는 대도시 렌트비는 2~3배를 넘는다.

임대 매물 정보 사이트 ‘줌퍼’(Zumper)에 따르면 뉴욕시의 렌트비는 무려 4,300달러에 달하고 샌프란시스코 역시 3,000달러에 가깝다. 라우츠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렌트비가 젊은 세대의 주택 구입을 가로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팬데믹을 거치며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 층 비율이 높아졌다”라고 설명했다.

◇ 부모 집에 살며 구입 타이밍 기다려

젊은 세대에게 현재 주택 구입 여건은 사상 최악이다.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은 크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주택 구입 타이밍을 살피는 젊은 세대도 상당수다. 여전히 치솟는 주택 가격과 높은 이자율로 인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잠시 접은 젊은 세대가 많다.

지난해 전국 주택 중간 가격은 42만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이며 모기지 이자율도 6%대로 작년의 2배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젊은 층 주택 구입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매물이다. 지난해 매물 수준은 사상 최저수준으로 그나마 나오는 매물은 높은 구매 능력을 갖춘 베이비부머 세대가 채 가기 일쑤였다. 젊은 층의 주택 구입이 이처럼 힘들어지면서 지난해 첫주택구입자 중간 나이는 36세로 부모 세대의 29세보다 약 7세나 많았다.

경제연구기관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젊은 세대의 주택 구입 능력 붕괴로 부모님 집에 장기간 얹혀살며 생활비를 절약하려는 것이 전혀 이상한 전략이 아니다”라며 “저가대 주택 공급이 늘지 않는 한 이 같은 트렌드가 이어질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연방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2023년 25~34세 남성 중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비율은 20%로 1980년대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연령대 여성 중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은 약 12%로 낮지만 이 비율 역시 상승세다.

◇ 내 집 마련 이루려면 불편 감수해야

인디언헤드시의 세 번째 시장 임기를 맡고 있는 폴린은 부모님 집에 얹혀살 때 지하실에서 남동생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동생이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채팅을 하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한 덕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올해 34세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알렉스 모로시아스도 내키진 않았지만 부모님 집에 얹혀산 덕분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오래 혼자 생활했기 때문에 아버지 집에 다시 들어가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렌트비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그 돈을 집 살 돈에 보태 쓰라는 말에 아버지 집으로 순순히 들어왔다.

6개월 동안 월급을 대부분을 모은 모로시아스는 아버지가 집을 팔고 새어머니와 이사 나간 뒤에 어머니의 집에 들어가 다시 캥거루족 생활을 이어갔다. 2021년 7월 팬데믹 봉쇄령이 풀릴 즈음 충분한 다운페이먼트를 마련한 모로시아스는 시카고 외곽에 38만 6,000달러짜리 콘도를 3%의 이자율로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모로시아스는 “부모님이 내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다”라며 “혼자 생활하는 것을 포기한 것에 대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준 최 객원 기자>

[출처] 미주 한국일보 2024년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