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자금·높은 집값에 젊은 층 내 집 마련 갈수록 힘들어…다운페이먼트 지원·대출 서류 공동 서명·전액 현금 구입
▶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는 부모 급증
주택 시장 과열 양상이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첫 주택구입자와 젊은 층 바이어는 내 집 마련에 여전히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젊은 층 바이어의 내 집 마련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다운페이먼트 부담이다. 집값이 치솟으면서 웬만한 다운페이먼트 금액으로는 주택 구입에 필요한 모기지 대출받기가 여간 힘든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 부모의 도움을 받아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젊은 층의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데 경제 전문 매체 블룸버그가 한인을 비롯한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 비싼 렌트비 내느니 차라리 집 사준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성인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는 부모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의 모기지 대출 서류에 공동 대출인으로 서명하거나 다운페이먼트를 지원하기도 하고 아예 집을 직접 사서 자녀 명의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고 있다. 뉴욕 소재 콜드웰뱅커 워버그의 베키 댄칙 에이전트는 15년 부동산 경력 중 최근처럼 많은 부모가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집값이 비싼 대도시의 경우 렌트비가 집값보다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주택 구입이 렌트비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헤지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 많아 앞으로 자녀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는 부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 ‘렌트비 절약, 집값 상승’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어
캐런 로완은 작년 당시 24세였던 딸 캐시디 리오나도를 위해 덴버에 침실 3개짜리 타운하우스를 구입해 주기로 했다. 딸 리오나도가 당시 임대하던 침실 1개짜리 아파트의 렌트비가 1,400달러에서 하루아침에 1,600달러로 인상된 것이 딸을 위해 집을 사주기로 한 결정적 이유다.
로완은 딸의 모기지 대출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 3만 달러와 클로징 비용을 별도로 제공하는 한편 모기지 대출 서류에 공동 서명인으로 서명해 딸이 대출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어머니의 결정은 주효했다. 타운하우스 구입 뒤 저축 효과가 전혀 없는 렌트비를 납부하지 않아도 됐고 불과 1년 사이 집값이 10만 달러나 올라 ‘에퀴티 부자’가 된 것이다.
로완은 “렌트비가 모기지 페이먼트 금액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렌트를 이어간다는 것이 재정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판단됐다”라며 “집값이 올라 다운페이먼트 금액이 이미 보상됐고 그동안 쌓인 에퀴티는 딸이 나중에 필요할 때 담보 대출받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정보기관 코어로직에 따르면 침실 1개짜리 아파트의 평균 렌트비는 지난 10년간 무려 75%나 급등했다. 렌트비 상승세는 최근 1년 사이 가장 가파르게 나타나 이미 1,700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 ‘부모 은행’ 문 두드리는 자녀 많아
밀레니엄 세대의 주택 소유율은 윗세대에 비해 매우 낮다. 밀레니엄 세대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을 판단되는 40세의 주택 소유율은 60%로 X 세대와 베이비 부머 세대가 40세였을 때의 주택 소유율(각각 64%, 68%)보다 낮다. 밀레니엄 세대가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학자금 상환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최근에는 각종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까지 겹쳐 학자금 대출을 보유한 밀레니엄 세대의 다운페이먼트 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에 집값 급등과 소득 정체 현상 등으로 ‘부모 은행’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 바이어 비율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다. 대부분 자금 출처 공개를 꺼리기 때문인데 개인 재정 상담 업계에 따르면 고소득층 자산가 중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는 사례가 최근 1~2년 사이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감세 및 일자리 법’(The Tax Cuts and Jobs Act) 이후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정 세법에 따라 부모가 자녀에게 세금 납부 없이 증여할 수 있는 금액이 1,200만 달러(부부 2,400만 달러)로 상향 조정됐다. 개정 세법은 2025년 말까지만 유효하고 이후부터는 다시 기존 절반 수준으로 하향 조정되기 때문에 그전에 자녀의 부동산 구입에 필요한 지원을 마치려는 부모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자산가 부모 상속 계획 일환으로 자녀 주택 구입
콜드웰 뱅커 워버그의 엘렌 스카이스 브로커는 최근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는 한 부모의 사례를 소개했다. 고소득 자산가인 아버지가 딸을 위해 뉴욕에 위치한 300만 달러 규모의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이는 딸에게 물려줄 미래 자산을 앞당겨 증여한 것이라고 스카이스 브로커가 설명했다. 딸은 앞으로 아파트 관리비와 리모델링 비 등을 책임질 계획이다. 스카이스 브로커는 “상속 계획의 일환으로 자녀 부동산을 구입해 주는 부모가 많다”라며 “사망 전 자녀를 지원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세법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도 자녀를 위해 미국에 부동산을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 한국에 거주하는 박미정 씨는 최근 콜롬비아 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뉴욕에서 직장을 잡은 아들을 위해 100만 달러 규모의 콘도를 구입했다. 박 씨의 부동산 구입을 도운 미나 비베인 에이전트는 “외국인 중 미국에 유학 중인 자녀를 위해 부동산을 구입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라며 “이들 역시 미국의 치솟는 렌트비 부담에 부동산 구입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도시 대학가 인근에서 자녀를 위해 주택을 구입하는 부모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대학가 인근은 임대 주택을 찾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렌트비 등 생활비가 살인적 수준으로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투자 효과를 기대하는 부모들에 의한 부동산 구입이 많은 지역이다. 콜롬비아, 뉴욕 대학 등 명문 사립대가 위치한 뉴욕의 경우 한 학기당 주거비만 무려 1만 달러를 훌쩍 넘을 정도로 생활비 부담이 살인적이다.
<준 최 객원 기자>
[출처] 미주 한국일보 2022년 6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