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운사이즈 하고 싶어도 집값 너무 올라
▶ ‘신규주택 부족 속 매물 부족 원인’ 지적도
주택 매물이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직전이다. 주택 건축 업계가 신규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 것이 매물 부족의 첫 번째 원인이다. 주택 건축 업계는 2007년까지 새집을 마구 찍어내다가 서브 프라임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주택 건축 업계는 지금까지 몸을 사리며 신규 주택 공급을 조절하고 있다.
기존 주택 보유주가 집을 내놓지 않는 현상도 매물 부족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높은 주택 보유율을 자랑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집을 내놓지 않아 매물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정 전문 CNN머니가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고 텅 빈 큰 집에 남은 베이비 붐 세대가 집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봤다.
◇ 높은 세금 내느니 그냥 산다
결혼 생활 33년 동안 4자녀를 키워 낸 마타와 옥타비안 드라고스 부부. 70세를 훌쩍 넘긴 베이비 붐 세대인 이들은 북가주 엘 세리토의 집을 자의 반 타의 반 떠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동년배와 마찬가지로 4자녀 모두 각자의 가정을 꾸려 부모의 집을 떠났다. 소위 ‘엠티 네스터’(Empty Nester)인 이들 부부에게 침실 5개가 딸린 3,000평방피트짜리 집은 관리하기 힘든 저택으로 변했다. 부부는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하소연한다.
첫 번째 걱정은 양도 소득세다. 드라고스 부부처럼 한 집을 수십 년간 보유한 대부분 베이비 붐 세대는 그동안 주택 가치가 크게 올라 집을 팔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하지만 집값이 오른 만큼 처분 이익에 부과되는 양도 소득세 금액도 무시할 수 없다. 바로 이 양도 소득세 폭탄 때문에 주택 처분을 망설이는 베이비 붐 세대가 많다.
높은 양도 소득세를 내고서라도 이사를 하겠다는 베이비 붐 세대도 있다. 하지만 다운사이즈에 적당한 매물이 없어 이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라고스 부부도 마찬가지다.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싶지만 정든 동네는 떠나기 싫어 근처에 집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주변에 작은 집이나 아파트가 드물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매물이 나와도 그동안 오른 집값을 고려하면 그냥 지금 집에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남편은 “자칫 후회할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 다운사이즈를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 ‘집값 급등 지역 장기 거주’ 양도 소득세 폭탄
베이비 붐 세대가 집을 판다고 해서 모두가 양도 소득세 폭탄을 맞는 것은 아니다. 주택 처분 이익 중 일정 금액까지 양도 소득세 공제 대상이 되는데 집값이 크게 오른 지역의 경우에만 높은 양도 소득세가 부과 대상에 해당한다. 90년대 제정된 세법에 따라 독신인 경우 25만 달러까지, 부부의 경우 50만 달러까지 양도 소득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처분하는 주택이 주거 목적의 주택으로 처분 전 5년 중 2년 이상 거주 기록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987년 당시 전국 주택 중간 가격에 해당한 10만 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한 주택 보유자가 지금 55만 달러에 집을 팔면 처분에 따른 이익은 45만 달러다. 주택 보유자가 지난 5년 중 2년 이상 해당 주택에 거주했다면 양도 소득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집을 팔아도 내야 할 세금은 한 푼도 없다.
그런데 드라고스 부부처럼 지난 30년간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1987년 10만 달러에 구입하 주택이 지금 200만 달러로 올랐다면 주택 처분에 따른 이익은 190만 달러로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된다. 그러나 부부 납세자에 해당하는 50만 달러를 공제한 140만 달러에 해당하는 처분 소득에 대해서는 양도 소득세를 내야 한다. 20%의 연방 세율이 적용되는 경우 약 28만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연방 정부에 내야하고 세율이 높기로 악명 높은 가주의 경우 양도 소득세 총액이 45만 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 양도 소득세 규정 불공평하다 지적
북가주 리버모어 시에서 35년 넘게 거주한 피터 폴슨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양도 소득세를 내고 작년 정든 집을 팔고 은퇴자 주택 단지에 입주했다. “현행 양도 소득세 제도는 심각하게 불평등한 제도”라고 불평하는 폴슨 씨로서는 주택 처분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다소 외딴 동네 살았던 폴슨 씨 부부는 나이가 들면서 이웃과 병원 등 편의 시설이 가까운 지역을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폴슨 씨가 강하게 지적하는 현행 양도 소득세의 문제점은 인플레이션에 의한 집값 상승효과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폴슨 씨는 “가주처럼 집값이 폭등한 지역은 인플레이션을 적용해 양도 소득세 공제액을 따로 정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폴슨 씨처럼 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양도 소득세 폭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집을 내놓지 않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도 마련됐다.
민주당 소속 지미 파네타 연방하원의원은 작년 3월 이른바 ‘주택 매물 증가법’(More Homes on the Market Act)를 발의했다. 이 법안은 폴슨 씨의 지적대로 인플레이션을 적용해 양도 소득세 공제액을 상향 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당 의원 30여 명의 지지를 받아 발의된 이 법안은 현재 처리되지 않고 의회에 계류 중이다.
◇ 이사 갈 집값도 너무 올랐다
장기 보유로 집값이 크게 오른 집을 팔면 돈방석에 앉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다운사이즈에 적합한 소규모 주택의 집값 역시 그동안 만만치 않게 올라 새집 구입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이 때문에 다운사이즈를 망설이고 그동안 거주한 집에서 앞으로도 계속 머무는 ‘스테이 풋’(Stay Put)을 결정하는 베이비 붐 세대도 상당수다.
예를 들어 보유 주택을 팔아 50만 달러가 남아도 인근 콘도미니엄 구입에 45만 달러가 필요하다면 부동산 수수료와 클로징 비용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하나도 없어 은퇴 생활비가 걱정이다. 또 베이비 붐 세대 중 대부분은 이미 모기지 대출을 상환했거나 매우 낮은 이자율을 적용받는 경우가 많은데 새집 구입에 필요한 모기지 대출에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면 ‘인생 말년’에 페이먼트 부담에 허덕이기 쉽다.
<준 최 객원 기자>
[출처] 미주 한국일보 2024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