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중앙일보

가주 주택 매물 ‘초고속 매매’ 이유는?

By 2021년 04월 30일 No Comments

▶ 매물 부족으로 인한 경쟁심화 부작용
▶ 펜데믹 영향 상업용 부동산 자금 유입
▶ LA타임즈 ‘스피드데이트처럼 거래’

LA와 OC를 비롯한 남가주 주택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빠른 속도로 팔리는 집들이다. LA타임스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고 해도 이튿날이면 이미 팔리고 사라진 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노스 터스틴에 4베드룸 단독주택이 매물로 나왔다. 3일 뒤 주말을 맞아 빅과 새라 부부는 110만 달러에 나온 이 집을 보러 갔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오퍼들이 5일 전부터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주의 주택시장은 수년간 매물이 넉넉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다. 오픈하우스에서 쿠키를 먹으면서 집을 둘러볼 여유가 없고 한 번에 한 그룹만 들어가고 있다. 빅과 새라 부부도 겨우 30분 만에 2092스퀘어피트의 집을 살펴봐야 했고 투어를 마치고 나갈 때는 다음 차례의 바이어들이 보내는 눈총을 느껴야 했다.

빅은 “스피드 데이트를 하고 당장 누군가와 결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한편으로는 경쟁에서 이기면 짜릿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대체 뭘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전국적으로도 주택은 초고속으로 팔리고 있다. 바이어들은 생애 최대 금액의 구매를 하면서 손가락을 튕기듯이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가주도 최근 30년 사이 가장 빠른 속도로 집들이 거래되고 있다.

지난 3월 가주에서 매물로 나온 집이 팔리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의 중간값은 8일에 불과했다. 가주부동산협회(CAR)가 1990년부터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단 기록이다. 버블이 극심했던 2003~2005년도 20일 이상이 걸렸다. 팬데믹 이전 주택시장 호황기였던 2017년에도 14일로 현재보다 길었다.

당연히 이유는 공급 부족으로 팬데믹은 집을 살 능력을 갖춘 소득층에 타격을 입히지 못하면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났다. 주택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도 가장 어린 이들이 30대 초반에 접어들며 첫 주택 사냥에 나섰다. 여기에 비디오 투어 등이 코로나19로 대중화되면서 실물로 집을 보지 않고 사는 경우도 늘면서 속도 경쟁에 기름을 끼얹은 상황이 됐다.

바이어들의 질주는 갖가지 신기록을 양산했다. ‘레드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집을 사기 위해 오퍼를 던진 바이어 중 63%는 실제로 집을 보지 않고 제안한 경험이 있었다. 또 지난 11일 기준 이전 4주일간 팔린 집 가운데 43%는 호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는데 이는 2012년 이후 최고치다.

사우스베이의 개리슨 컴스탁 에이전트는 “호손의 3베드룸 집에 예상했던 것보다 4배 이상 많은 39건의 오퍼가 몰렸다”며 “리스팅한지 6일 만에 호가보다 11만6000달러 높은 가격에 에스크로를 열었다”고 말했다. 레드핀의 린지 캐츠 에이전트는 평균적으로 팔리는 기간이 이틀이라고 전했다.

남가주의 집값은 8개월 연속 두 자릿수로 올랐다. 넘치는 수요에 심각한 물량 부족 때문으로 질려버린 바이어들은 감정, 인스펙션 등을 알아서 포기하고 있다. 빅과 새라 부부는 인스펙션 등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호가보다 15만 달러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노스터스틴의 4베드룸 주택의 주인이 됐다. 빅은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바이어가 모여드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존 번스 부동산 컨설팅’의 릭 팰라시오스 리서치 디렉터는 현금을 앞세워 주택을 매입하는 투자자들이 주택 판매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셀러 입장에서 현금 바이어는 모기지 승인 여부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 더욱 선호하는 대상이다. 이들 대형 투자회사들은 리스팅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매물 중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특정한 집들을 찾도록 알고리즘을 운영하며 재빨리 사들인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연금 펀드, 개인 투자그룹과 기타 기관 투자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런 투자 방식은 팬데믹 이전에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리테일과 관광산업과 연관된 부동산 투자가 위축되면서 막대한 유휴자금이 단독주택 시장으로 밀려들었다는 설명이다. 존 번스 부동산 컨설팅은 전국 대부분 시장에서 투자가들이 사들인 주택 규모는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남가주 주택시장에서 투자가들의 비중 증가는 카운티 별로 벤투라가 34% 늘어 가장 컸고, 인랜드는 25%, OC는 13%, LA는 12% 증가를 각각 기록했다.

질로에 따르면 공급 차원에서 새로운 리스팅은 줄고 있다. LA와 OC는 지난 3월 기준 주택 매물이 1년 전보다 9% 가까이 감소했다. CAR의 오스카 웨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공급 부족이 엄청난 주택 구매 속도의 주된 원인”이라며 “올 3월 가주의 주택 매물은 부동산 버블이 극심했던 2004년 3월보다 67%나 적었다”고 말했다.

일부 에이전트들은 여전히 홈오너들이 집을 팔길 꺼린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쉬운 여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새로운 집을 구하기란 엄청난 도전인 까닭에 셀러로 나서기 꺼린다는 설명이다.

출발점은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는 것이다. 물론 주택 건축업자들은 열심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가주의 주요 인기 지역에서 새집을 짓기는 쉽지 않고 특히 최근 목재 등의 가격 폭등도 장애가 되고 있다.

팰라시오스 리서치 디렉터는 팬데믹 이후 빨라진 주택 거래 속도가 금명간 최고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빠르게 집이 팔린 경우는 없었고 그 배경에는 거대 자본이 자리 잡고 있다”며 “심지어는 실수요자인 개인 바이어도 실제로 집을 보지 않고 사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크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LA 웨스트사이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트레그러스타드 에이전트는 “심지어 어떤 셀러들은 집을 내놓은 지 5일이 지났는데 왜 오퍼가 들어오지 않느냐며 패닉에 빠진 경우도 봤다”며 “그들은 말하길 ‘사촌도, 형제도, 사돈도 모두가 10개 이상의 오퍼는 받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류정일 기자
[출처] 미주 중앙일보 2021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