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강력 셀러스 마켓이 빚어낸 주택 시장 진풍경
▶ 바이어는 물론 에이전트도 ‘힘들다’ 하소연
매물은 부족한데 바이어는 넘쳐나다 보니 주택 거래 시‘왕’처럼 군림하는 셀러가 흔하다. 전례 없는 초강력 셀러스 마켓에서 바이어들의 곡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셀러는 그나마 양반이다.
키우던 애완동물을 떠안으라거나, 이사 갈 집을 찾아야 하니 6개월 동안 이사 오지 말라는 등 어처구니없는 셀러의 요구에 바이어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상태다. 재정 전문 머니 매거진이 초강력 셀러스 마켓이 만들어 낸 주택 시장 진풍경을 살펴봤다.
◇ 크리스마스 이전에는 집 못 빼요
부동산 투자자 카일 맥코컬은 올해 가족들의 보금자리로 적합한 집을 찾고 있었다. 맥코컬은 주택 시장이 셀러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집을 찾은 뒤 전해 들은 셀러의 요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맥코컬은 지난 10월쯤 펜실베니아 허쉬 인근에 위치한 침실 4개짜리 집을 사기로 결정하고 오퍼를 넣었다. 그런데 셀러로부터 다소 황당한 요구 조건을 받고 잠시 고민을 하게 됐다.
셀러가 오퍼를 수락하면 대개 30일이면 거래가 마감되고 새집으로 이사 갈 수 있는데 셀러는 이사 가기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내고 싶다며 에스크로를 연기를 거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맥코컬은 새 집에서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싶었지만 셀러의 요구 조건을 거절했다가는 주택 구입이 내년으로 넘어갈 것 같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 키우던 애완견도 떠맡으세요
맥코컬이 경험한 셀러의 황당한 요구 조건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만약 셀러가 ‘내 집을 사려면 키우던 강아지도 떠맡아야 한다’라는 조건을 들고 나오면 어떨까? 셀러에 의해 주택 시장이 좌지우지된 올해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있었고 그것도 여러 바이어들이 경험한 사례였다.
부동산 업체 피셔 그룹 파크 시티 리얼 에스테이트 소속 에이전트 벤 피셔는 지난 2월 한 셀러로부터 듣도 보도 못한 요구 조건을 듣고 처음엔 말문이 막혔다.
피셔 에이전트는 “셀러가 원하는 리스팅 조건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키우던 강아지를 거래에 포함하는 조건이 없으면 안 팔겠다’고 말했을 때 ‘거래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셀러에 따르면 골든리트리버 품종인 지미는 셀러가 내놓은 집에 태어나고 자란 가족과 같은 강아지였다. 그래서 집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강아지를 배려한 셀러의 주택 판매 조건이었던 것이었다. 집을 내놓은 뒤 일부 바이어들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받았지만 다행히 애완견을 사랑하는 바이어를 만나 ‘2 플러스 1’ 거래가 무사히 성사됐다.
◇ 변기는 가져갑니다
일부 셀러가 집을 팔고 나가면서 주택 설비를 뜯어가는 경우는 전에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셀러가 가지고 가려는 설비가 변기라면 얼마나 황당할까? 부동산 투자자 페리 쩡은 투자용 주택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변기를 뜯어 가려는 셀러를 만난 사연을 나눴다.
주택의 바닥이나 천정, 벽 등에 고정되어 있는 붙박이 가구는 거래에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인 주택 매매 관행이다. 따라서 주방 및 욕실 캐비닛, 욕조는 물론 화장실의 변기도 당연히 거래 가격에 포함되어야 한다.
처음엔 셀러의 농담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변기를 가져가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매스터 욕실에 설치된 변기는 이른바 ‘스마트 변기’로 ‘체질량지수’(BMI), 혈당, 혈압, 체온 측정 기능을 갖춘 첨단 변기였던 것. 여기에 비데 기능 등도 갖춰져 가격이 1만 달러 상당이라는 것이 셀러의 설명이었다.
셀러스 마켓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례로 올해는 특히 여러 바이어가 피해를 입었다. 한 셀러는 주방과 입구에 설치된 타일을 모조리 뜯어가는 가 하면 또 다른 셀러는 뒷마당에 심어진 나무를 뽑아 가는 바람에 보기 흉한 구멍이 생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오퍼 제출 뒤 리스팅 가격 올리는 횡포
집을 사려는 바이어가 많은 시기에 셀러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가격을 올리는 시기가 문제다. 최근 집을 내놓고 바이어의 오퍼가 제출된 뒤에 가격을 다시 올려 바이어를 골탕 먹이는 셀러가 많이 눈에 띈다. LA 동부에 집을 찾던 한인 H 부부도 최근 황당한 경험을 한 뒤 현재 ‘주택 시장 상황이 무섭기까지 하다’고 하소연했다.
평소 찾던 조건의 집이 약 75만 달러에 나왔는데 시세를 알아보니 적정한 가격이었다. 리스팅 에이전트가 이미 오퍼가 여러 건 들어왔고 들어온 가격도 75만 달러보다 높다는 귀띔에 큰맘 먹고 3만 달러를 얹어 78만 달러에 오퍼를 보냈다. 그랬더니 셀러가 다시 최고로 가능한 가격으로 오퍼 가격을 조정해 보라고 해서 최고 한도로 판단되는 78만 5,000달러로 오퍼를 다시 보냈다.
황당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셀러의 반응을 물어보는 연락에 답변이 없더니 가격을 81만 8,000달러로 올린 것이다. 처음 내놓은 가격보다 무려 7만 달러를 더 올려 집을 다시 내놓고는 셀러가 81만 달러 정도에 거래할 의향이 있다는 말만 전해왔다. H 부부는 ‘이건 아니다’ 싶어 일단 오퍼 협상을 중단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 에이전트에게 이사 비용 떠넘기기 일쑤
셀러의 황당한 행위에 피해를 입는 것은 바이어뿐만 아니다. 리스팅 에이전트 역시 셀러의 무리한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부동산 에이전트 M은 셀러가 이사를 도와 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던 사연을 나눴다. M 에이전트에 따르면 이사 준비에만 4시간이 넘게 걸렸고 결국 셀러는 에이전트에게 이사 비용까지 떠넘겼다고 한다.
미시건 주의 D 에이전트 진상 셀러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경험하고 치를 떨었다. 첫 번째 셀러는 자신이 직접 만든 가구를 거래 조건에 포함하지 않으면 안 팔겠다고 하는 바람에 D 에이전트가 거래 성사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했다. 두 번째 셀러는 거래가 끝나고 이사 나가면서 집을 제대로 비우지 않아 D 에이전트가 애를 먹었다. 집안에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를 잔뜩 남겨 놓는 바람에 D에이전트가 6,000달러의 비용을 들여 쓰레기 트럭 여러 대를 불러와야 했다.
<준 최 객원 기자>
[출처] 미주 한국일보 2021년 12월 23일